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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동마을에서 수철마을까지 지도입니다.


 




세동마을은 전형적인 지리산 산촌 마을로 한 때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선종이(닥종이) 생산지로

주변 산에는 닥나무가지천이어서, 닥나무를 삶과 종이를 뜨는 일로 분주한 마을이었다. 불과 50년전

만해도 이 마을의 모든 가옥은 산과 계곡에서 자라는 억새를 띠로 이어 얹은 샛집이었다. 종이 뜨는

일상과 샛집 지붕의 아름다운 풍경을 이젠 볼 수 없어도 바위를 담으로 이용한집, 너럭바위에 앉은 집,

바위틈으로 솟는 우물 등 자연 속에서 세 들어 사는 산촌마을의 모습은 지금도 변함없다.​


 

 

송문교를 지나고



푸르고 맑고 깨끗한 엄천강을 따라서 걸어 갑니다.

 



약간 힘든 고갯길도 잇습니다.



약간 힘든 고갯길도 있습니다.  



 


[추모공원]

이곳은 산청,함양사건 희생자 합동묘역으로 한국전쟁중이던 1951년 2월7일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

가 지리산 토벌작전인 "건벽청야"라는 작전을 수행하면서 산청군 금서면 가현, 방곡마을과 함양군 휴

천면 점촌 마을, 유림면 서주마을에서 무고한 민간인 705명을 학살하였다. 이 때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

들을 모시는 묘역이다. 입구에는 전시실을 갖춘 역사교육관이 자리하고 잇다. 학살 현장 영상물과 모형,

사실중언 영상, 학살에 사용된 총알과 총기, 관련 자료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실내 벽에는 3명의 학살 주범 부조상을 붙여놓고 있다 당시 11사단 9연대장 이었던 오익경 대령,

11사단 9연대 3대대장 한동석 소령, 경남지구 계엄민사부장 김종원 대령등이다. 이들은 그해 말 군법회

의에 회부되어 무기징역등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모두 대통령 특사로 금세 풀려나 군에 복귀하거나

경찰간부로 특채 되었다.


민간인 학살 주범들을 부조상으로 만들어 벽속에 가두어 두고 후세들이 이들의 만행을 영원히 기억도록 한다.


 

 

 

[상사폭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루지 못한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아고 흐른다. 여러가지 버젼이 19금의 이야기

가 있으나 하나만 소개하면, 동네 처녀를 짝사랑하는 총각이 상사병으로 죽었다, 그녀를 잊지못하는 총각

은 뱀으로 다시 태어나서 상사폭포에서 목욕하던 그 처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놀란 처녀가 손으로 내려쳐

 뱀은 떨어져 죽었다. 그 후 그 처녀는 바위가 되었고, 총각은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수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쌍재는 함양과 산청을 오가던 큰 고개이다. 함양의 곶감이 이 고개를 넘어 산청 덕산장으로 갔다.

쌍재에서 다시 10분정도 걸으면 동강~수철 구간의 마지막 고개인 고동재이다.


 

산청읍이 보인다.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고동재 가기전의 산불 감시초소

 


고동재는 방곡리에서 수철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동처럼 생긴  고개라 해서 고동재라 불린다.



 

고동재에서 수철로 가는 고갯길은 생각보다 넓은 콘크리트 입도다. 3.6KM 내리막길에 무릅이 아프다.







수철리 마을회관에 도착 하였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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