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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초교-미륵암-대피소-투석봉-최고봉-노적봉-악귀봉-용바위-전망대-수암산-덕산온천

높이는 381m 이다. 홍성군의  진산으로 1973년 가야산, 덕숭산등 과 함께 산 일대가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동남쪽으로 금마천이 흘러 가야산쪽에서 흘러온 효교천과 함께 삽교천을 이룬 뒤 삽교호로

흘러든다.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와 봉우리로 이루어져 충남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다. 

정상까지 산행하는 동안 수백 장의 한국화를 보듯이 시시각각으로 풍경이 바뀌는 것이 용봉산의 특징이다.

용봉산의 이름은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듯한 형상인 데서 유래했다. 남방형 중턱과 서편 산록에

완만한 경사가 길게 펼쳐져 있고 요소요소에 소나무 군락이 자연 발생적으로 있으며 장군바위 등 절경과

백제 때 고찰인 용봉사와 보물 제 355인 마애석불을 비롯한 문화재가 곳곳마다 산재한다.

용봉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예산의 덕승산, 서산의 가야산, 예당평야의 시원한 경치도 일품이다.


용봉산 정상석 산의 이름이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듯한 형상인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산행인들이 많아서 정상석을 차지하지 못하고, 그냥 찍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본 노적봉입니다.

 

 

[신경리 마애석불]


자연 암석의 앞면을 파서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입상을 조각하였다. 얼굴은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을

띠고 있고, 얼굴에 비해서 하체로 내려 갈수록 묘사한 선이 약화되었다. 손 모양은 오른손을 내려서

다리에 붙이고 왼손을 들어 중생의 모든 두려움을 없애고 평안을 주는 모양인 시무외인을 표현하였다.

두광과 신광은 2줄의 돌출 선으로 표현했다.

불상의 하단에 놓인 대좌는 별도의 돌로 되었으며, 옆면에 2겹의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이 불상은

조각 양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건립된 마애불의 특징을 잘 나냐 내고 있다.

불상 아래에서 기와 조각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마애석불을 노새악시 바위라고 부른다. 노새악시는 요즘 말로 노처녀이다. 그럼

이 신경이 마애석불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옛날에 용봉산에는 어머니와 두 남매가 살고 있었다. 두 남매는 힘이 장사였고, 특히 누나인 딸은

용봉산의 거대한 바위를 공깃돌 굴리듯하는 여장부였다. 딸은 시집갈 나이가 훨신 지났는데도.

결혼 상대가 없었다. 엄마는 백방으로 딸의  혼처를 찾아 보았지만 혼기가 지난 달의 배필을 구하기가

쉽지않았다.

​딸은 남동생과 함께 용봉산에 즐비한 바위돌을 장난감 삼아 힘자람만 하며 세월을 보냈다. 어머니는

허구한 날 힘자랑으로 세월을 보내는 딸이 한심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용봉산 산신령

의 부름을 받았다. 용봉산 산신령 앞으로 불려간 어머니는 청천 벽력같은 명령을 받았다.

​"이 작은 산에 힘센 장사가 두 명씩이나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두 남매 중 하나만 선택하여라."​

이게 무슨 말인가 아들과 딸 중에서 한 자식만 선택 하라니. 두 남매 중에서​ 한 자식은 죽어야  한다는

명령이 아닌가?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와서 끼니를 거르며 고민고민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봐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어머니는 여러 날 동안 고민하던 끝에 두 남매에게 시합을 시키기로 하였다. 시합에서 이기는

자식은 살아남고 지는 자식은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

​어머니는 두 남매를 불러 앉혔다. 그리고 산신령의 명령을 두 남매에게 전했다. "어느 누구도 산신령님

의 명령을 거역 할 수는 없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시합을 해서 이기는 쪽이 살아남는 것이다. 어머니는

시합 내용을 설명했다. 누나인 딸은 용봉산 정상에 산성을 쌓고 동생인 아들은 무쇠 신을 신고 한양에

다녀오는 시합이었다.

​두 남매의 목숨을 건 시합이 시작되었다. 힘이 장사인 딸은 쉬지 않고 바위를 옮겨서 성을 쌓았다.

어머니는 마음을 졸이며 자식들의 시합을 지켜보았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딸이 쌓는 산성은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마음 한 편으로는 아들이 시합에서 이겨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진행 상황은 딸의 승리가 확실해 지고 있다.

​어머니는 다급하게 부엌으로 달려갔다. 급히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팥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조금 후에

가마솥에서는 팥죽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커다란 밥 그릇에 팥죽을 퍼 담아서 딸에게

달려갔다.

​"애야, 며칠 동안 한 끼도 먹지 않았으니 얼마나 배가 고프냐? 팥죽을 끓여 왔으니 잠깐 먹고 하려무나."

​딸은 먹음직스러운 팥죽을 보자마자 입에서 군침이 돌았다. 뱃속에서는 꼬르륵꼬르륵 장자가 뒤틀리는

듯했다. 딸은 봉수산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 남동생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딸은 시합에서 이길 것을 확신했다. 이제 바위 한 개만​ 옮겨 놓으면 완성이 있다. 승리의 확신이 서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힘들게 들고 가던 바위를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딸은 정신없이​ 팥죽을 먹기 시작했다. 며칠

을 굻었으므로 팥죽은 입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씹을 틈도 없이 뱃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딸이 정신없이 팥죽을 먹는 사이에 동쪽 산등성이에서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길게 다가왔다. 남동생이 무쇠신

을 신고 동쪽 봉수산 고개를 겅중겅중 넘어오고 있었다. 딸은 팥죽을 먹다말고 그릇을 내던지고 서둘러 일어

났다. 길옆에  내려놓았던 바위 앞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으랐차" 딸이 온몸에 힘을 주고 바위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딸은 커다란 바위를 들어올리다

말고 그대로 주저 앉았다. 갑자기 아랫배가 아파오면서 주룩주룩 설사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딸은 바위를 들어

올리려고 온 힘을 썻지만 헛 수고였다. 몸에 힘만 주면 설사가 흘러내려서 도저히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바위를 감싸 안고 안간힘을 써도 아까운 시간만 흘러갔다. 그 사이에 동생은 용봉산에 도착하였다. 결국 누나는

시합에서 패하고 목숨을 잃었다. 세월이 흐른 뒤 용봉산 정상 부근 바위에는 거대한 마애불이 세워졌다.

마애불은 인자하고 온화한 여자 모습의 부처님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애불을 볼 때마다 노처녀 딸이 부처님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하여 노새악시 바위라고 부른다​

 

 

수암산 정상 표시석입니다. 용봉산은 홍성이고 수암산은 예산에 속한답니다. 

 

소나무길로 이어지는 하산길 뒷동산 처럼 편한 나무 계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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