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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지리산은 한국 8경의 하나이고 5대 명산 중 하나로, 웅장하고 경치가 뛰어나다. 그 범위가 35개 군 15개 면에 걸쳐 있으며 484(13천만평)로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남한 제2의 고봉 천왕봉(1,915m), 노고단(1,507m)으로 이어지는 1백리 능선에 주능선에 만도 반야봉(1,751m), 토끼봉 등 고산 준봉이 10여개나 있으며, 85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있다. 정상에서 남원, 진주, 곡성, 구례, 함양 고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능선을 중심으로 해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고 있다. 하나는 낙동강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함양 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과 봉황산으로부터 흘러온 섬진강이다.

이들 강으로 흘러드는 개천인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등 10여개의 하천이 있으며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로 "지리산 12동천"을 이루고 있다.

청학, 화개, 덕산, 악양, 마천, 백무, 칠선동과 피아골, 밤밭골, 들돋골, 뱀사골, 연곡골의 12동천은 수없는 아름답고 검푸른 담과 소, 비폭을 간직한 채 지리산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이들은 또한 숱한 정담과 애환까지 안은 채 또다른 골을 이루고 있는데 73개의 골, 혹은 99개의 골이라 할 정도의 무궁무진한 골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 비경 중 10경 은 노고 운해, 피아골 단풍, 반야낙조, 벽소령 명월, 세석철쭉, 불일폭포, 연하선경, 천왕 일출, 칠선계곡, 섬진청류로 비경을 이룬다.

지리산은 사계졀 산행지로 봄이면 세석 및 바래봉의 철쭉, 화개장에서 쌍계사 까지의 터널을 이루는 벚꽃, 여름이면 싱그러운 신록, 폭포, 계곡, 가을이면 피아골 계곡 3km에 이르는 단풍과 만복대 등산길의 억새, 겨울의 설경 등 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지리산 종주를 목표로 하면서 지리산 화엄사탐방안내소에서


화엄사 매표소 입구에서

화엄사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544)에 인도에서 온 연기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자장율사와 도선국사에 의한 중건 과정을 거치며 번성하다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인조 14(1636)에 중건되었다. 화엄경의 화엄두 글자를 따서 화엄사라 명명되었으며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각황전과 세련된 조각이 아름다운 사사자 삼층석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기가 큰 각황전 앞 석등, 각황전 안의 영산회괘불탱 등 4점의 국보와 대웅전, 화엄석경, ·서 오층석탑 등 4점의 보물을 비롯해 천연기념물 제1040호로 지정된 올벚나무까지, 빛나는 문화유산을 간직한 천 년 고찰이다.

연기암은 전하는 말로는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세우기 전에 이곳에서 토굴을 짓고 가람을 세워 화엄법문을 설했다고 하나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암자를 복원할 때 암수막새와 청자 편, 백자 편 등이 출토되어 그 연대를 통일신라 말 이전으로 추정할 뿐이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잿더미만 남아 4백년 넘게 축대만 남아 있던 것을 1989년 종원 스님이 각종 전각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각으로는 법성원, 지석당, 적멸당, 원응당, 일맥당, 적광전, 문수전, 관음전이 있다. 연기암에는 높이 13m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문수보살상이 있다.

노고단 대피소는 세계 2차대전 때 군 휴양소로 쓰였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대식 시설을 갖춘 산장으로 지리산 등반을 하지 않더라도 노고단의 일출과 일몰을 보고자 한다면 하룻밤 묵어보기를 권한다. 침낭과 담요는 대여할 수 있으며 간단한 요깃거리도 판매하고 있으니 약간의 불편만 감수한다면 등산을 좋아하지 않아도 독특한 추억거리가 되겠다.

지리산 종주를 할 요량으로 하룻밤을 보냈던 노고단 대피소에서 아침에 눈을 뜨니 태풍 때문에 등산로가 통제되었다는 소식이다. 퇴실 시간 까지 대피소에서 미적거리다가 하산을 한다.

성삼재를 경유하여 천은사로 하산을 한다 하기로 한다. 성삼재는 지리산 능선 서쪽 끝에 있는 고개로, 높이 1,102m 이다. 마한때 성씨가 다른 세명의 장군이 지켰던 고개라하여 성삼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성삼재에서 천은사까지의 구간에는 1988년에 개통된 지리산 횡단도로(지방도861)가 개설되어 있는데 거리는 약10이다. 이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시암재를 만나게 된다. 시암재는 샘이 있는 고개라하여 시암재라 불린다. 해발 950m에 위치하며 휴게소가 조성되어있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제법 아름답다.

수도암은 천은사 소속 암자로서 신라 흥덕왕때 덕운대사가 창건하고 조선조에 도선국사가 중건하였으나 시절이 무상하여 그 명맥만 유지하여 오다가 1980년 평전화상이 불사를 시작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내리는 비로 후즐근해진 모습으로 수도암을 찾았다. 남은 음식물은 라면뿐이였다. 라면을 끊이니. 스님이 밥을 내어준다. 한참을 머물다가 감사함을 전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성삼재에서 천은사까지의 구간에는 1988년에 개통된 지리산 횡단도로(지방도861)가 개설되어 있는데 거리는 약10이다. 이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시암재를 만나게 된다. 시암재는 샘이 있는 고개라하여 시암재라 불린다. 해발 950m에 위치하며 휴게소가 조성되어있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제법 아름답다.

천은사는 19842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인 828(흥덕왕 3)에 덕운선사(德雲禪師)와 인도에서 온 승려 스루가 창건하였고, 경내에 이슬처럼 맑고 찬 샘이 있어 이름을 감로사(甘露寺)라 하였다고 한다. 그 샘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어 불탄 뒤 중건할 때, 샘에 큰 구렁이가 자꾸 나타나 잡아 죽였더니 샘이 솟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을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고 바꾸자 그뒤로 원인 모를 화재와 재앙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절을 지키는 구렁이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두려워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선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이광사가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물 흐르는 듯한 서체로 써서 일주문 현판으로 걸었더니 그뒤로 재앙이 그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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