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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4 순례길(모악산~전주한옥마을).gpx

아름다운 순례길은 유교, 불교, 원불교, 개신교, 천주교, 민족종교 등이 대화와 소통을 위해 전라북도 지역의 다양한 종교문화 유산을 연결하여 만든 순례길입니다. 백제시대의 미륵불교, 조선시대의 경세론적 성리학으로서의 유교, 실학에 바탕을 둔 천주교,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놓고자 한 동학과 원불교, 근대의 개혁을 강조한 개신교 등, 새로운 정신을 필요로 할 때마다 종교는 그 심장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이러한 종교들이 이 지역에 대부분 그 모태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전라북도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순례길은 여러 종교와 토착문화가 융합되어 새로운 정신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발걸음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길에서 스님이 천주교의 정신이 깃든 천호 피정의 집까지 여정을 하고, 신부님이 원불교 숲 문화센터에서 잠을 청하며, 원불교의 교무님이 교회에서 묵어가고, 목사님이 송광사의 템플스테이에서 잠시 머무릅니다. 이 지극한 환대의 평화를 위한 대화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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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시작점인 구이저수지

아름다운 순례길의 상징인 달팽이

모악산 입구 모악산은 높이 793m이며 전주시 남쪽 12지점에 위치하며, 아래고 김제평야와 만경평야가 펼쳐진다. 산 정상에 어미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어 모악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호남평야의 젖줄 구실을 하는 구이저수지 금평저수지와 불선제, 갈마제 등의 물이 모두 모악산으로 부터 흘러 내린다. 정상에 올라서면 전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남으로는 내장산, 서쪽으로는 변산반도가 바라다 보인다.

 예로부터 논산시 두마면의 신도안(新都安), 영주시 풍기읍이 금계동(金鷄洞)과 함께 명당(明堂)이라 하여 피난처이자, 각종 무속 신안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다.

전주시 완산구를 흐르는 삼천전 따라 걸어 갑니다.

때로는 길도아닌 삼천천 둑방길을 걸어가기도 하고요


전북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 두방마을 가장 아름다운 숲을 간직하고 있는 두방마을은 도립공원 모악산 끝자락에 67가구가 모여사는 조그만 마을입니다. 500년생 느티나무와 각종 활엽수 등 70여 본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잎이 무성한 봄부터 가을까지 사람들이 발길이 이어 집니다. 특히 단풍이 절정이 이루는 가을철에는 온 마을이 붉은색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어 모악산의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삼천의 자전거길을 따라서

삼천교는 지난 19732차로로 가설됬으나 30년이 지나면서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어 철거하고 전주의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합죽선과 전주 기접놀이늘 강관으로 형상화 하는 것으로써 활짝 펴진 부채살의 역동성을 강조 햇다.

마전교를 지나고

어은동 진북터널을 통광하고 있습니다.

도로원표는 도로 노선의 기점과 종점 또는 경과지를 표시한 것으로 전라북도 도로원표는 전주시 팔달로 기업은행 앞에 있다. 원래 현 위치에서 북쪽으로 20m 떨어진 우체국앞에 일제강점기 때부터 있었던 것을 옮겼다. 원표 옆과 뒤 3면엔 목포 173, 부산 169, 신의주 745, 청진 964, 서울 272, 평양 525, ()이란 를 뜻하는 한자다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경기전을 비롯한 많은 역사 유적과 유물이 자리잡고 있다. 본래 경기전은 옛 전주부성 동남쪽에 광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많은 부속 건물을 거느린 웅장한 규모였으나 일제 강점기때 절반의 땅을 잃고 부속 건물은 철거 되었다. 이후 점차 복원하여 옛 모습의 일부나마 되찾은 경기전 경내에는 조선 예종의 태를 묻어 두었던 태실과 그것을 기념하는 비석,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가 있다. 경내 뒤에는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과 그 부인의 위패를 모셔둔 조경묘가 자리잡고 있다.

 

하마비는 조선시대에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이 비 앞으로 지나갈 때에는 누그든지 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표석이다. , 장군 또는 벼슬이 높은 유명한 성인들의 태생지나 사당앞에 세웠으며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말에서 내리는 것이다. 이곳 경기전은 조선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곳이기에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리고 아무나 출입하지 말라는 뜻으로 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이라 새긴 하마비를 1614년에 세웠으며 1856년에 중각(重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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